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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바흐의 신앙은 끝났는가: 《마태 수난곡》이 오늘의 청중에게 던지는 질문

종교가 없어도 눈물이 나는 음악—그 이유를 찾아서

경건한사색적인압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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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알라룸푸르의 눈물: 신앙 없이도 무너지는 순간

2025년 여름밤, 쿠알라룸푸르의 공연장 안에는 에어컨 바람보다 먼저 낮은 긴장이 흘렀다. 객석에는 히잡을 쓴 관객도 있었고, 십자가 목걸이를 한 서양인도 있었고, 그냥 음악 페스티벌이라서 들어온 젊은 얼굴도 있었다. 말레이시아라는 도시의 공기답게, 언어와 종교와 습관이 한 공간에 포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 첫 합창, ‘Kommt, ihr Töchter, helft mir klagen’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두 시간도 아니고, 인터미션까지 합치면 세 시간 가까이 사람을 붙들어 두는 이 거대한 수난극 앞에서, 누구는 프로그램 북을 붙잡고 있었고 누구는 고개를 숙였고 누구는 처음엔 낯설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음악이 조금씩 깊어질수록 그 표정들이 무너졌다. 이 장면이 이상한 까닭은 분명하다. 여기 울려 퍼지는 이름은 예수이고, 서사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고, 텍스트는 루터교의 경건과 18세기 독일어의 울림으로 짜여 있다. 다시 말해, 객석의 많은 이들에게 이것은 자기 신앙의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난다. 왜일까. 종교적 신념이 없는데도,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데도, 왜 이 음악은 사람의 가장 안쪽을 건드릴까. 여기서 이 글의 질문이 시작된다. 이건 단순히 클래식 애호가의 호기심이 아니다. 예술은 원래 맥락을 잃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신앙의 언어는 낡아도 감정의 진실은 남는가, 인간은 자기 것이 아닌 이야기 앞에서도 왜 무너지는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이 세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던진다. 바로 그 장면을 먼저 귀로 붙잡아 두는 편이 좋겠다. 말로 길게 설명하기 전에, 그날의 공기가 어떤 밀도로 떨렸는지 직접 들어보자.

Bach: St. Matthew Passion, BWV 244 - David Chin | Malaysia Bach Festival Singers & Orchestra 2025

2025년 말레이시아 바흐 페스티벌 실황. 다종교·다문화 청중 앞에서 울려 퍼진 이 연주가 어떤 표정으로 공기를 채웠는지, 영상의 첫 소절부터 귀를 기울여 보라.

방금 들은 첫 합창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음악은 교리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몸을 붙든다. 낮게 깔리는 통주저음, 행진처럼 그러나 비탄처럼 걸어가는 리듬, 서로 다른 집단이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압력. 이것은 신학 수업이 아니라 사건의 현장이다. 그래서 객석의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아도, 누군가가 끌려가고 군중이 웅성거리고 어떤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슬픔을 감당하려 애쓰는 이 분위기 앞에서는 이미 자기 삶의 기억을 꺼내게 된다. 무너짐은 종교보다 먼저 오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흐는 그 감각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악보에 옮긴 사람이다.


2.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1727년 봄: 이 음악이 태어난 자리

이제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보자. 1727년 성금요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오늘 우리가 콘서트홀에서 앉아서 듣는 《마태 수난곡》은 원래 박수로 끝나는 공연이 아니었다. 그날 교회 안에서 이것은 예배의 한가운데 놓인 행위였다. 예배는 길었다. 네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복음서 낭독과 기도와 설교가 긴 흐름을 이루었다. 수난곡은 그 사이에 삽입되었다기보다, 말씀을 해설하고 회중의 양심을 흔드는 또 하나의 복음처럼 기능했다. 사람들은 지금처럼 ‘전곡 감상’이라는 태도로 듣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력 속에서, 성금요일이라는 시간의 무게 속에서, 이미 금식과 침묵과 묵상을 몸에 지닌 채 이 음악과 마주했다. 성 토마스 교회의 물리적 공간도 중요하다. 두 개의 합창단과 두 개의 오케스트라가 좌우에 나뉘어 서는 구조는 그냥 화려한 효과가 아니었다. 한쪽에서 탄식이 시작되면 다른 쪽이 응답했고, 어떤 순간에는 서로 질문하고 어떤 순간에는 군중처럼 몰아붙였다. 이 배치는 교회 건축과 결합해 일종의 입체적 드라마를 만들었다. 오늘날 스피커로 평면적으로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왼편에서 들리는 비탄과 오른편에서 날아오는 대답이 회중의 몸을 통과하면서, 사람들은 이야기의 바깥이 아니라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을 테니까. 바흐에게 이 모든 것은 단지 직업적 기술이 아니었다. 그는 악보 끝마다 S.D.G., 곧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고 적곤 했다. 습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반복은 한 인간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그는 음악을 장식이나 취미가 아니라 봉헌으로 이해했다. 바흐가 공감했던 루터교 전통의 문장 하나가 있다. ‘경건한 음악이 봉헌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가 있다.’ 이 문장을 믿는 사람에게 작곡은 창작이기 이전에 예배 행위다. 그러니 《마태 수난곡》은 처음부터 예배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쓰인 작품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철저히 예배 안에 속했기 때문에, 오늘의 세속 청중 앞에서 이 음악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그 출발점을 상상하며 서막 합창을 다시 들어보자. 이번에는 단순히 아름다운 합창으로 듣지 말고, 1727년 교회 안의 공간감을 함께 떠올려 보면 좋겠다.

Bach: St Matthew Passion | Kommt, ihr Töchter, helft mir klagen | Sir Stephen Cleobury

《마태 수난곡》의 서막 합창 ‘오라, 딸들아, 나의 탄식을 도우라’—킹스 칼리지 케임브리지의 연주로. 두 합창단이 교차하며 쌓아 올리는 이 거대한 탄식의 구조물이, 1727년 라이프치히 교회 안에서 어떤 공간감으로 울렸을지 상상하며 들어보라.

방금 들은 교차와 중첩 속에서 핵심은 규모가 아니다. 규모를 통해 회중을 드라마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핵심이다. 이 점을 기억해 두면, 곧이어 살펴볼 논쟁이 더 또렷해진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음악을 교회 안에서 불편해했을까. 왜 바흐는 스스로를 예배의 봉사자로 여겼는데도 동시에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을까.


3. 음악은 장식인가, 설교인가: 바흐와 경건주의자들의 싸움

18세기 루터교 안에서 벌어진 긴장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오늘 우리는 바흐를 너무 쉽게 ‘위대한 작곡가’라는 후광 속에서 본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맞서야 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그의 음악을 노골적으로 의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경건주의자들은 복잡한 대위법과 화려한 협주풍 양식을 경계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회중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단순한 찬송, 직접적인 회개, 명료한 교훈이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바흐의 수난곡은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너무 길고, 너무 정교하고, 너무 극적이어서 자칫 예배를 먹어치우는 공연처럼 보였으니까. 한마디로 말해, 오페라하우스가 교회로 들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과연 그랬을까. 바흐의 입장에서는 정반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음악이 단지 복음을 감싸는 장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음악 자체가 복음의 해설이자, 어떤 순간에는 복음의 현존이라고 믿었다. 설교가 머리를 흔든다면 음악은 머리와 가슴과 몸을 동시에 흔든다. 예배가 진실한 참여를 원한다면, 회중을 수동적 청자로 두는 대신 이 거대한 드라마 속으로 던져 넣어야 한다고 그는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코랄은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회중의 입이 되고, 아리아는 개인의 양심이 되고, 합창은 군중과 역사와 공동체의 소리가 된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오늘을 떠올려 보자. 이 싸움은 끝났을까. 한국 교회 안에서 찬송가와 CCM을 둘러싼 긴장, 예배의 감동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를 둘러싼 불신, 클래식 수난곡은 오히려 교회보다 세속 공연장에서 더 자주 연주되는 역설. 이름만 달라졌을 뿐, 논쟁의 구조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감동은 신앙을 돕는가, 아니면 신앙을 대체하는가. 예술적 완성도는 경건을 깊게 하는가, 아니면 자의식을 부풀리는가. 바흐는 이 질문 앞에서 결코 중립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싸웠고, 악보로 답했다. 《마태 수난곡》은 바로 그 대답의 가장 거대한 형태다.

음악은 단지 예배를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말씀을 울리게 하는 또 하나의 설교였다 — 바흐의 루터교적 세계를 요약하는 문장

그래서 《마태 수난곡》을 듣는 일은 곧 이 오래된 논쟁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불편한가, 아니면 너무 진실해서 불편한가. 바흐를 싫어했던 사람들조차 아마 그 둘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의 감정적 중심인 한 아리아가 등장한다. 모든 신학적 논쟁이 잠시 뒤로 밀려나고, 한 인간의 무너짐만 남는 순간. 베드로가 울기 시작하는 자리다.


4. ‘에르바름 디히’: 베드로의 울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무너지는 순간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쓰러뜨리는 대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대개 ‘Erbarme dich, mein Gott’가 나온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나가 통곡한다. 바흐는 이 장면 뒤에 곧바로 설교를 붙이지 않는다. 논리도 설명도 잠시 멈춘다. 대신 한 대의 바이올린을 내세운다. 이게 중요하다. 합창도 아니고, 군중의 외침도 아니고, 거대한 총주도 아니다. 혼자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한 줄의 선율이 먼저 공기를 가른다. 청취 가이드처럼 아주 천천히 따라가 보자. 도입의 바이올린은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자꾸 미끄러지고 돌아오고, 매달리고, 내려앉는다. 어떤 음은 울음을 참다가 다시 터지는 숨 같고, 어떤 장식음은 말을 잇지 못해 목이 메는 순간 같다. 여기에 알토가 들어오는 순간 물리적인 충격이 생긴다. 목소리는 바이올린과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흘러나오고 있던 울음의 결을 따라 들어와, 그 울음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문장을 종교적 참회의 공식으로만 들으면 절반만 듣는 셈이다. 여기에는 더 원초적인 것이 들어 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믿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비겁한 선택을 했다는 깨달음. 내가 지키고 싶었던 대상을 내 손으로 버렸다는 수치.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서 붕괴되는 순간이다. 신앙이 없어도 이 감정은 낯설지 않다. 살다 보면 누구나 베드로의 순간을 한 번쯤 만난다. 끝까지 지킬 거라 말해 놓고 도망친 약속, 가장 사랑하던 사람 앞에서 가장 비열해진 기억, 두려움 때문에 자기 신념을 팔아넘긴 경험. 그런 기억은 오래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바흐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베드로의 눈물을 단지 성경 속 사건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그 눈물을 인간이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보편적 순간으로 바꿔 버린다. 그래서 이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종교적 거리감이 사라진다. 베드로의 이름을 몰라도, 그가 왜 우는지는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바로 이 감정을 가장 선명하게 체험할 수 있는 연주 가운데 하나가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의 전곡이다. 지금은 전체를 틀어 두고, 그 유명한 순간이 다가올 때를 기다려 보자. 약 1시간 44분경, 바이올린의 첫 음이 들어오는 바로 그 찰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Bach - St Matthew Passion BWV 244 - Van Veldhoven | Netherlands Bach Society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의 연주로 듣는 《마태 수난곡》 전곡. ‘에르바름 디히’가 흐르는 순간 약 1시간 44분경, 바이올린의 첫 음이 공기를 가르는 그 찰나에 집중해 보라. 베드로의 이름을 몰라도, 그 선율은 안쪽의 어떤 기억을 건드릴 것이다.

반 펠트호번의 이 연주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템포는 지나치게 늘어지지 않지만 서두르지도 않고, 바이올린은 눈물을 보여주려 애쓰기보다 떨림 자체를 남긴다. 그래서 더 아프다. 연주자가 대신 울어 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자기 몫의 울음을 꺼내게 만든다. 바로 이때 《마태 수난곡》은 특정 종교의 교리서를 넘어선다. 죄라는 단어를 믿지 않아도, 자기 배반의 고통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5. 두 개의 합창단, 두 개의 목소리: 구조 안에 숨겨진 신학

《마태 수난곡》을 처음 들으면 가장 먼저 압도되는 것은 길이와 규모다. 하지만 조금만 귀를 세우면, 진짜 놀라운 것은 그 규모를 조직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두 개의 합창단과 두 개의 오케스트라. 바흐는 이 이중 구조를 단순히 웅장한 소리를 위해 쓰지 않았다. 각각의 집단은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움직인다. 어떤 순간에는 군중과 군중처럼 맞부딪히고, 어떤 순간에는 질문과 대답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한쪽이 사건을 말하고 다른 쪽이 그 사건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직선적 서사가 아니라, 여러 층의 목소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거대한 내적 드라마가 된다. 이를테면 ‘누구냐’, ‘어디로 가느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같은 물음은 단지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사가 아니다. 듣는 쪽도 거기에 휘말린다. 한쪽 합창이 군중의 불안과 흥분을 밀어 올리면 다른 쪽은 그 혼란을 확대하거나 비틀고, 그러는 사이 청중은 어느 한편에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없게 된다. 이건 굉장히 현대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단순히 무대 위 인물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끊임없이 입장을 바꿔 가며 사건에 연루되는 참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랄이 삽입될 때의 효과는 더 결정적이다. 코랄은 원래 회중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선율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가 극적으로 고조되는 한복판에 공동체의 목소리가 끼어드는 셈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옛날 예루살렘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고, 바흐는 계속해서 청중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마태 수난곡》을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등장인물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들의 배치를 따라가며 내가 지금 어느 위치로 밀려나고 있는지 감지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군중이 되고, 어느 순간에는 베드로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그저 침묵 속에 있는 목격자가 된다. 이 다중 시점이야말로 이 작품이 300년이 지나도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인간은 늘 여러 목소리로 찢겨 사니까.

결국 구조는 신학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신학을 몸으로 듣게 만든다. 죄와 은총, 배신과 용서, 역사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가 각각 다른 음색으로 동시에 울릴 때, 청중은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그 의미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게 된다. 이것이 바흐가 가진 극작가로서의 힘이다. 그는 설교처럼 말하지 않고, 구조로 참여를 강요한다.


6. 헤레베헤와 반 펠트호번: 두 지휘자가 읽은 두 개의 수난

같은 악보가 전혀 다른 인간 드라마로 들리는 순간을 보고 싶다면, 필리프 헤레베헤와 요스 반 펠트호번을 나란히 놓아 보면 된다. 둘 다 역사주의 연주의 미학 안에 서 있지만, 호흡의 목적이 다르다. 반 펠트호번의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 연주는 사건의 생생함을 앞세운다. 레치타티보는 이야기의 흐름이 또렷하고, 합창은 군중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직접적이며, 아리아는 개인 감정이 피부 가까이 와 닿는다. 음색도 지나치게 향수에 젖지 않는다. 투명하지만 차갑지 않고, 정교하지만 박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연주를 듣고 있으면 신학적 체계를 모르는 사람도 인간의 비극으로 따라 들어가기 쉽다. 헤레베헤는 다르다. 그의 연주는 대체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 있다. 그러나 그 거리는 냉담함이 아니라 경건의 거리다. 프레이징은 더 길고 숨은 더 깊다. 합창이 터져도 안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아리아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받아 안는 그릇처럼 움직인다. 어떤 순간에는 거의 기도문을 읽는 속도와 자세가 느껴진다. 눈물의 장면에서도 표정이 과장되지 않는다. 울부짖기보다, 울음을 견디는 사람처럼 들린다. 그래서 헤레베헤의 《마태 수난곡》은 음악을 통해 무릎 꿇는 방식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정답’인가를 묻는 일이 거의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반 펠트호번은 신앙 바깥의 청중에게 이 작품이 왜 인간적 진실로 다가오는지 보여주고, 헤레베헤는 신앙 안에서 길어 올린 침묵이 음악을 어떻게 정화하는지 보여준다. 하나는 상처의 체온을, 다른 하나는 상처를 안고 버티는 영혼의 자세를 들려준다. 결국 이 비교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앙 안에서 듣는 것과 신앙 밖에서 듣는 것은 정말 다른가. 혹은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같은 눈물에 도달하는가. 그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는 방법은 곧바로 연주를 바꿔 들어 보는 것이다. 조금 전 반 펠트호번의 인간적인 숨결을 기억한 채, এবার 헤레베헤의 고요한 음영 속으로 들어가 보자.

Bach Matthäus Passion St Matthew BWV 244 Philippe Herreweghe

헤레베헤가 이끄는 《마태 수난곡》. 이 연주가 주는 고요함은 단순한 음악적 선택이 아니다. 한 음 한 음을 기도처럼 다루는 이 해석과, 앞서 들은 반 펠트호번의 연주를 마음속에서 겹쳐 보라. 어느 쪽에서 더 깊이 멈칫하게 되는지 스스로 살펴보면 좋다.

방금 느껴졌겠지만, 헤레베헤의 아름다움은 표면의 미려함이 아니라 절제의 밀도에서 나온다. 같은 서막 합창도 반 펠트호번이 군중의 걸음을 더 또렷이 보여준다면, 헤레베헤는 이미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처럼 소리를 숙인다. 이 차이는 결국 바흐 해석의 문을 넓힌다. 《마태 수난곡》은 닫힌 교리 텍스트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존재 방식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열린 악보다.


7. 탈종교 시대의 청중: 나는 왜 눈물이 나는가

이제 현재로 돌아오자.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스스로를 종교인이라 규정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교회 음악의 원래 맥락은 점점 희미해지고, 성경 이야기는 공통 교양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언어가 되어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태 수난곡》 공연장은 여전히 채워진다. 해마다 성주간이 오면 바흐의 수난곡이 프로그램에 오르고, 종교가 없는 청중도 몇 시간짜리 이 거대한 작품을 듣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왜일까. 신경과학과 음악 심리학은 여기서 몇 가지 실마리를 준다. 인간의 뇌는 느린 템포, 하행 선율, 불협에서 협화로 풀리는 긴장, 인간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에 강하게 반응한다. 슬픔을 암시하는 음악적 표지는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호흡이 무너지고, 기대가 지연되고, 선율이 매달리듯 흔들릴 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정서적 의미를 감지한다. 바흐는 이 감정 문법을 비정상적으로 정교하게 다루는 작곡가다. 그는 슬픔을 막연한 분위기로 쓰지 않는다. 죄책감은 어떤 화성으로, 주저함은 어떤 리듬으로, 용서를 갈망하는 손길은 어떤 선율의 방향으로 느껴지는지 거의 초인적인 정확도로 계산하고 체화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설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눈물은 단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기 서사와의 접속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에르바름 디히’를 들으며 베드로를 떠올리기보다, 자기 삶에서 말하지 못한 장면을 떠올린다. 서막 합창의 거대한 탄식을 들으며 예루살렘을 상상하기보다, 자기 공동체의 상실과 자기 시대의 무력감을 겹쳐 본다. 말레이시아의 무슬림 청중이 울고, 유럽의 무종교 청중이 침묵하고, 서울의 어떤 청중이 공연장 밖으로 나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죄책감, 배신, 자기혐오, 용서받고 싶다는 갈망은 종교가 발명한 감정이 아니다. 종교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고, 바흐는 그 이름 이전의 떨림을 음표로 번역했다. 그래서 이 음악은 교리를 모르더라도 사람을 알아본다.

어쩌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왜 종교가 없어도 눈물이 나는가가 아니라, 왜 인간은 여전히 용서와 비탄과 회복의 언어를 필요로 하는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탈종교 시대에도 그 필요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거대한 사례처럼 보인다.


8. S.D.G.—이 서명을 신앙 없이 읽을 수 있는가

바흐의 악보 끝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세 글자, S.D.G.를 다시 보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이 문장은 너무 자주 인용되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한 인간이 자신이 만든 거의 모든 중요한 작업 끝에,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표식을 남긴다는 건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다. 특히 그가 살던 삶을 함께 떠올리면 더 그렇다. 바흐는 아홉 살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평생 독일 중부의 비교적 좁은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라이프치히에서 교회와 시의회, 교육 행정과 실무 사이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곡을 써야 했다. 경건주의자들의 비판도 받았고, 동시대에 항상 가장 세련된 명성을 누린 인물도 아니었다. 심지어 죽은 뒤에는 오랜 시간 거의 잊혔다. 오늘 우리가 아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후광은 사후에, 멘델스존의 부활 연주와 19세기 이후의 재평가를 거치며 천천히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S.D.G.를 지우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종교 관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기 능력을 숭배하지 않겠다는 선언, 혹은 자기 고통과 노동을 더 큰 의미에 걸어 두려는 몸짓으로 읽을 수도 있다. 탈종교 시대의 언어로 옮기면 절대적 헌신, 초월을 향한 정렬, 내 재능과 시간이 오직 자기 과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신학과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서명이 가리키는 깊이만큼은 신앙인만의 소유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에 자신을 걸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신에게, 누군가는 진리에게, 누군가는 사랑과 책임에게, 누군가는 예술 그 자체에게. 그래서 바흐의 S.D.G.를 오늘 읽는다는 것은, 그를 억지로 세속화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자기 성공의 기념비가 아니라 봉헌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바로 그 태도가 그의 음악에 이상한 견고함을 남겼다. 좌절과 상실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힘. 《마태 수난곡》이 지금도 사람을 흔드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신앙 명제 때문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전부를 걸고 만든 작품만이 지닐 수 있는 윤리적 중량 때문이기도 하다.


9. 다시, 처음부터 들어보라: 새로운 귀로 듣는 《마태 수난곡》

이제 처음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쿠알라룸푸르의 공연장에서 누군가가 몰래 눈가를 닦던 장면, 1727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긴 예배, 바흐와 경건주의자들 사이의 오래된 싸움, 베드로가 자기 목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던 순간, 두 지휘자가 같은 악보에서 전혀 다른 침묵을 끌어냈던 방식, 그리고 악보 끝에 남겨진 S.D.G.의 묵직한 서명. 이 모든 것을 가볍게라도 마음에 쥔 채 다시 서막 합창을 틀어 보면, 아마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이번에는 굳이 종교의 언어로 듣지 않아도 된다. 성금요일의 교리를 완벽히 이해할 필요도 없고, 루터교 코랄의 출처를 외울 필요도 없다. 대신 각자 살아오며 가장 깊이 슬펐던 순간,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 용서받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어떤 장면 하나를 들고 이 음악 앞에 앉으면 된다. 그러면 바흐가 300년 전에 써 내려간 이 거대한 수난극은 갑자기 아주 현재적인 언어가 된다.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배신을 다룬 옛 종교 서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한계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의미를 찾으려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바흐의 신앙은 끝났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 신앙의 제도적 언어는 오늘 많은 사람에게 낯설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신앙이 붙들고 있던 인간의 감정, 죄책감과 연민, 상실과 회복, 절대적 헌신에 대한 갈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바흐는 바로 그 살아남은 감정의 층위에서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 음악은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피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기 안의 베드로를, 자기 안의 군중을, 자기 안의 침묵을 데리고 와서 들어보라고 말한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틀어 보자. 이번에는 해설보다 호흡을 따라가며, 신학보다 상처의 결을 따라가며.

Bach - St Matthew Passion BWV 244 - Van Veldhoven | Netherlands Bach Society

이제 다시, 처음부터. 이번에는 신학 교과서도 해설지도 필요 없다. 안쪽에 있는 베드로를 데려와 이 음악 앞에 앉혀 보라. 바흐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서막의 첫 걸음이 다시 시작될 때, 예수의 이름보다 먼저 들리는 것은 탄식의 질감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탄식이 끝내 어디로 향하는지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신앙을 공유하지 않아도 왜 눈물이 나는지 조금은 알게 된다. 바흐의 언어는 낡았을지 몰라도, 그가 겨냥한 인간의 심장은 아직 낡지 않았기 때문이다.